실용 고대 도시

실용 고대 도시

실리온은 역사적으로 팜필리아 지역에 위치한 고요한 마을로, 세릭에서 약 16킬로미터, 안탈야에서 약 30킬로미터 떨어져 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이 마을은 트로이 전쟁에서 돌아온 영웅인 몰프소스와 칼카스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실리온은 안탈야 지역에서 가장 잘 보존된 헬레니스틱 시가 남아있어, 헬레니스틱 방어에 중요한 도시로 자랑합니다.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실리온은 기원전 5세기 초반부터 기록되었으며, 델리안 연맹의 납세 회원으로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리온의 역사적 기록은 기원전 425년에 갑자기 사라졌지만, 기원전 333년에 다시 등장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 도시의 강력한 방어시설과 용병 군대로 인해 알렉산더 대왕이 정복하지 못했습니다.


헬레니스틱 시대의 셀루코스 왕조 통치 아래, 실리온은 번영하며 많은 웅장한 건물들이 세워졌습니다. 이 시기에 페르가몬 왕국이 지배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로마 상원이 지지하여 실리온은 자치 도시로 남아 있었습니다. 이 도시는 기원후 270년까지 동전을 발행했습니다.


비잔티움 시대에 실리온은 일정한 의미를 가졌으며, 컨스탄티누스 2세와 안토니오 1세 두 개의 세계 교황의 탄생지였습니다. 특히, 기원후 678년에 아랍 함대가 컨스탄티노플을 정복하지 못하고 실리온 근처에서 비명을 지었던 뒤 폭풍우로 인해 선박들이 파괴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실리온은 요새로 보호되고 황제 대표의 지배자가 주재하는 도시로, 지중해 연안과 아모리움, 니카이아(지금의 이즈닉) 및 컨스탄티노플을 연결하는 중요한 도로의 시작점이었습니다. 8세기와 9세기에 실리온은 주변의 페르게를 능가하여 이 도시가 지방의 주요 도시가 되었으며, 페르게는 실리온에 비시스 복귀를 하게 되었습니다. 튼튼한 방어시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리온은 1207년에 셀주크 왕국에 의해 함께 팜필리아 전체와 함께 함락되었습니다.


실리온에 접근할 때, 방문자들은 먼저 경기장의 흔적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페르게와 비슷한 디자인의 구조물인 하단의 게이트에 도착합니다. 게이트의 발밑에는 체육관의 흔적이 있습니다. 5미터 폭의 넓은 비탈로는 상품과 물품을 실리온으로 운반할 수 있게 해주었으며, 고대 시대에 번화한 상업의 중심지로 만들어주었습니다.


실리온의 남쪽 끝에는 극장의 흔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산사태 이후에는 상부 좌석만이 남아있습니다. 인근 오데온의 흔적은 유지되지 않았습니다. 방문자들은 남쪽 지평선을 바라보며 멋진 경치를 즐길 수 있습니다. 넓은 평원이 지중해 연안까지 펼쳐져 있습니다. 또한 이 지역에는 동쪽 면에 4개의 기둥으로 장식된 고대 신전의 벽이 여전히 서 있습니다.


실리온의 핵심에는 비잔티움 시대의 큰 건물이 있으며, 이 건물은 편전장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도시의 가장 오래된 구조물들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헬레니스틱 건물들도 이 지역에서 발견됩니다.


실리온을 방문하는 것은 산을 오르는 데 어려움이 따릅니다. 그러나 한번 방문자들이 마을 정상에 도달하면, 숨막히는 경치가 그만한 노력을 하게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