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갈라소스 고대 도시 사갈라소스는 터키 남서부 버두르 주에 위치한 고대 도시로, 터키에서 가장 잘 보존된 고대 도시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사갈라소스는 지중해 해안의 북쪽으로 10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 있으며, 과거 피시디아 지역의 가장 중요한 도시로 여겨졌습니다. 피시디아 지역은 남쪽으로 타우러스 산맥, 북쪽으로 지안고 평원을 포함한 지역입니다. 사갈라소스는 해수면보다 1,450에서 1,600미터 높이에 있는 남쪽을 향한 비탈에 위치해 있습니다. 도시가 성장함에 따라 주변의 계곡들을 점차적으로 자신의 영토에 편입시켰습니다. 이 도시는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로의 원정 중인 333년 경에 정복되었습니다. 사갈라소스는 기원전 25년 로마 제국에 합류한 이후 무역과 상업의 중요한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이 도시는 안나톨리아 도로망에 연결되어 이오니아 지역을 포함한 리시아의 해안 도시들과도 연결되었습니다. 고대 시대에 사갈라소스는 도자기와 농산물을 수출하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사망 이후 이 지역은 안티고누스 몬오파탈무스, 린시마코스, 그리고 셀레우코스 시리아 왕국의 통치를 받았습니다. 오랜 역사와 많은 도전에도 불구하고, 사갈라소스는 고대 도시 계획과 건축의 놀라운 예시로 남아 있습니다. 사갈라소스의 건축은 헬레니즘화와 로마 통치의 영향을 받았으며, 몇 세기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235년부터 4세기까지 건설은 중단되었지만, 행정적 발전으로 인해 관습이 변하고 368년에 건축이 재개되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현지인들의 도시 관리에 대한 참여가 줄어들고, 종교적 변화로 인해 나중 시기 건축양식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사갈라소스는 강인함에도 불구하고, 6세기와 7세기에 발생한 세 가지 주요 사건이 그 지속적인 쇠퇴에 기여했습니다. 각 세기가 지진으로 시작되었으며, 기원전 541년에서 542년에는 역병이 도시를 휩쓸었습니다. 이러한 파괴적인 사건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은 사갈라소스에 남아서 주로 농업으로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그러나 13세기에는 도시 주민들이 사라졌으며, 주변 도시인 아글라순이 이 지역에 성장하였고, 그들 앞서 알렉산더의 언덕을 버린 사람들처럼 셀주크 터키인들이 1200년 경에 남아있던 정착지를 정복했습니다. 아글라순에 위치한 사갈라소스는 역사 동안 번영과 쇠퇴의 여러 시기를 경험했습니다. 13세기에는 캐러반세라이와 함암이 마을 광장 근처에 지어졌으며, 16세기에는 지역적으로 중요한 시장이 열리는 활기 넘치는 상업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1990년 이후에는 벨기에 루벤 대학의 고고학자들이 이 고대 도시의 450헥타르 크기의 유적지를 발굴하고 있습니다. 발굴조사는 대규모 로마 목욕탕 복합체, 도서관, 80개 이상의 방을 갖춘 도시 거주민의 저택, 그리고 최대 9,000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극장과 같은 놀라운 발견을 가져왔습니다. 사갈라소스에서 가장 놀라운 유적 중 하나는 안토니우스 분수입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번영하는 시기인 기원후 161년에서 180년 사이에 건설된 이 분수는 1993년부터 1995년까지의 발굴 이후 지금까지도 지속적으로 물을 흘려보내고 있습니다. 분수의 복원 작업은 1998년에 시작되어 2000년에 완료되었습니다.